2010. 6. 24. 15:59
"팅~ 나 우울해요"
"그럼 광주로 데이트나 갈까?"
"좋아요!"


이렇게 난 팅의 꾀임에 넘어갔다. 몇일 후 일정을 체크해보니 "11월 12일 광주 교사직무 연수 참여 : 팅, 리사"라고 나와있질 않나! 순간 당황했다. 옆에 있는 단지에게 "뭐야!! 이날 왜 내가 워크샾해?"라고 했더니, "너 이거 지난번에 팅이랑 데이트한다는거 아니야?". 맙소사. 낚였구나 싶었다. 다음날 팅이 얘기하길, 가고 싶지 않으면 안 가도 된단다. 팅은 재밌을 것 같아서 가는건데 파트너가 계속 짜증만 내고 하기싫다고 하면 억지로 시키고 싶진 않다고 했다. 다만 10대인 나에겐 좋은 경험일 것 같았고 이 경험을 같이 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는 가겠다고 했다. 하지만 또 한가지 걱정은, 일주일에 기간동안 세미나 준비, 몸벌레 실기 준비, 논산 리허설을 다 완벽하게 마쳐야하는 상황. 게다가 논산 공연 끝나고 광주로 혼자 새마을호를 타고 가서 대략 5시간정도를 혼자 기다려야한다는 조건. 잘할 수 있을까? 하지만 무서웠다. 혼자 기차를 타본다거나, 피씨방을 간다는 건 내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들이었다. 물론 호주에선 할수있지만 한국이니까 덜컥 겁부터 났다. (생각해보니 한국와서 안해본일이 너무 많다. 사소한것이라도.. 심지어 지난번엔 우체국가서 어떻게 우편물을 보내고 하는지 몰랐으니ㅡㅡ;; 그땐 라임이 가서 도와줬지만;;)


토요일 11시 공연을 끝내고 2시 57분 기차를 탔다. 잠깐 잠에들었다. 깨어보니 1시간이 지났더라. 남은 시간동안 책을 읽었다. 그리고 5시쯤 광주 도착. 광주역에서 나와 나는 의외로 상당히 들떴다. 혼자서 기차를 타고 광주에 왔으니 이제 시간만 떼우면 되는거 아닌가? 내가 세상에서 제일 자신있는거. 혼자서 시간 떼우기!! (결코 자랑은 아닌것 같다... 흑.) 그러나 왠걸.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내가 기대했던 민들레 같은 카페는 없었다-_- 더군다나 내 눈에 보이는건 작은 분식점 같은 곳 하나, 아름다운가게, 편의점, 생맥주 파는 낡은 카페 같은 곳. 끝! 그외에 주위엔 도로와 차가 쌩쌩 달리고 있었다. 뭐냐고. 하는수없이 피씨방에 가서 파워포인트 준비를 해야지!라고 생각했는데.. 우이씨 그 추운곳에서 30분을 방황하고 나서야 피씨방을 찾을수 있었다. 피씨방 사건은 정말 웃겼다. 뭐랄까. 초등학생이 어른처럼 옷을 입고 술집에 들어가는 느낌이랄까?


"한시간에 얼마에요?"
"500원이요. 가입 안하신 분은 700원이요. 게임하실거죠?"
"네? 아니요."
"그럼 뭐하실 건데요."
"(한참을 생각하다가) 에세이 쓰고 메일로 보내고.. 이런거요."
"(어이없다는듯이) 담배 안피시죠."
"(깜짝놀라) 당연히 안피죠!"
"여기 아무대나 앉으세요."


정말 자리에 앉을때 술집에 통과된 느낌이랄까. 자리에 앉아서, "들어왔다. 들어왔다."를 반복하며 들뜬 마음으로 거친 숨소리를 고르게 쉬었다...(?) 그렇게 앉아서 인트라 여기저기 자료를 찾다가 내가 처음 노리단을 들어와서 썼던 글들, 후기들을 읽게 되었다. 글들을 읽으면서 마음 어딘가가 정말.. 따뜻해졌다고 해야하나? 몇달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옛날 같았고 지금은 이런 느낌없이 하루하루를 행복한게 아니라 당연하다고 생각을하며 살고 아무런 감정없이 공연을 한다는 사실에 너무 속상했다. 팅이 말했던 설문조사 문서를 내부문서 게시판에서 찾아내서 일단 작성을 했다. 그러니 옛날 기분들이 조금씩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 감정에 지금의 느낌들을 덫붙여서 작성하니 뭔가 풍성해진 듯한 느낌? 아.. 글을 너무 오랫동안 안썼더니, 나의 재능마저 점점 죽어가는구나... OTL 아무튼 그렇게 작업을 하고 있는데 갑자기 배가 고프더라. 한참을 고민하다가 의자를 밀어넣고 카운터로 향했다. "(한참을 과자앞에서 망설이다가 자갈치를 들고와서 기어 들어가는 목소리로) 이거 나중에 같이 계산해도 되죠?".... 상당히 소심하구나, 리사야.


7시 30분쯤, 컴퓨터를 아무리 뒤져봐도 파워포인트나 워드, 혹은 한글까지 없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젠장! 뭐야! 결국, 갈곳도 없고 할것도 없고.. 남은 2시간 정도를 싸이질이나 하고, 단지한테 전화와서 피씨방에서 전화나 하고;; 그렇게 잘잘 보냈다ㅡㅡ... 9시 40분쯤, 드디어 팅을 만났다! 만나서 내일 KTX 티켓을 예매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인터넷이 되는 모텔로 갔다. (내가 파워포인트 만들어야한다고 팅을 막 졸랐기 때문에...) 팅이 틀어논 티비소리에, 또 갑자기 네이트온에 들어와서 말을 거는 심바덕에 나의 파워포인트 작업은 1시부터 시작할 수 있었다. 팅이 잠 들고 나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 노리단 단원의 싸이월드와 FTP 이곳저곳을 뒤져 좋은 사진들을 찾았고, 짧게 각 슬라이드에 글을 썼다. 막 끝내고 시간을 보니 3시쯤 되었다. 효과는 내일 다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팅 옆에 고이 누웠다.


아침 10시. 정신없이 울려오는 알람소리. 팅이 가만히 누워있다가 먼저 씻으란다. 끝까지 버팅기다가 결국 내가 먼저 화장실로 들어간다. 몇시간 후면 세미나를 하는데, 전혀 떨리지 않았다. 정말 편안한 마음으로 나의 파워포인트를 USB에 옮겨놓고 광주역으로 갔다. 솔레를 만났다. 동네북팀에 소속이셨던 분. 이제는 교사직무 연수 등을 기획하시고 대안교육 쪽으로 일하신다는 분. 솔레는 봉고차에 나와 팅, 또 다른 교사 2분을 태우시고 장소로 향하였다. 팅이 선물해주신 "행복"이라는 책을 한참 읽고 있는데 갑자기 팅이 나의 어깨를 툭툭 치시더니 밖을 보라고 손짓하셨다. 밖을 보니 이런 아름다운 관경이 펼쳐질 줄이야... 드넓게 펼쳐진 들판과 여기저기 울긋불긋 물든 단풍과 은행잎. 게다가 그 위를 살포시 빛추던 햇빛. 정말 정겨웠던 풍경이었다. 지금이라도 차에서 당장 내려 그 들판을 마구 뛰어다니고 싶었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아기자기하게 지어졌던 건물. 지은지 얼마 안됐나보다. 한쪽에선 연수를 위해 머물었던 선생님들의 기숙사가 있었고 한쪽은 약간 작은 건물에 활짝 열려진 문 사이로 길게 뻗은 통로 끝에 환한 들판이 보였다. 멋있구나. 하자가 이런 환경에 있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간단한 식사를 하고 (최고로 맛있었다) 40분정도에 자유시간이 주어졌는데 이때 팅과 파람 하품 조각을 만들고 파워포인트 마무리를 지었다. 효과를 넣었다. 파워포인트를 끝내니 뭔가 뿌듯한 것이... 아 이 주체할 수 없었던 기쁨. 얼마만에 느끼는 감정인가! 요즘은 항상 짜증만 내고 신경이 예민해졌는데, 이 장소에 온 것 만으로도 기분전환이 되었다. 노리단 강의는 3시부터 시작이었다. 그래서 1시 반에 있었던 대안교육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흠, 뭐랄까. 대학교 교사가 1시간 반동안 강의를 했는데, 솔직히 어려운 단어만 써서 무슨 말인지 잘 못알아들었다. 하지만 한가지는 확실했다. 그 선생님은 한국에 공교육이 확실히 나쁜 길로 접근하는 사실을 깨닫고 아무리 노력해도 바꿀 수 없으니 차라리 이젠 아예 망하기를 바라고 그 과정을 옆에서 지켜볼수 밖에 없다는 것. 팅이 나중에 나에게 물어보더라. "아까 그 선생님 강의 어땠어?".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안됬어요. 하지만 중간에 내가 태어난 지점과 죽는 지점이 있다면 자라나는 과정이 공부고 인생 자체가 교육이라고 말했을 때가 마음에 들었어요. 팅은요?". "난 슬퍼". "왜요?". "얼마나 잘못된 길로 접했으면 이젠 아예 망하길 간절히 바란다고까지 말했을까?"...


그 선생님의 강의가 끝나고 다른 선생님들이 물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올 동안 팅과 나는 노트북을 연결하고 우리의 세미나 준비를 하였다. 팅이 열심히 노리단에 대한 소개를 해주시고, 드디어 내가 나의 얘기를 할 차례.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그냥 파워포인트 사진 몇장과 글 몇자 쓰고 대부분 이야기로 진행하려고 했다.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지금까지 준비했던 스피치도 없이 그냥 생각나는데로 나의 느낌을 실어 이야기했다. 하나도 떨리지 않았다. 그냥 내가 느꼈던 점들과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다. 그냥 잘 했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렵지도 않았고, 잘 해냈다는 생각에 기분이 한층 나아진 것 같다. 하지만, 질문시간.


"행복해요?"
"저요?"
"네. 리사는 행복해요?"
"(한참을 아무말 없이 있다가) 저는 사실 노리단을 들어오기 전에 노리단의 공연을 보고 이런 생각을 했어요. 그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정말 즐겁고 행복하구나. 나도 그들처럼 공연을 해서 사람들을 즐겁게 해주고 싶어. 그게 노리단에 가장 큰 매력이었고, 그래서 들어오고 싶었어요. 공연을 할때면, 무대 위에 올라가면 아무 생각도 안들어요. 아무리 그 전에 나쁜일이 있었다고 해도 공연을 하다보면 무대위에서 관객들이 보여요. 다들 웃어주고 박수 쳐주고 좋아해줘요. 그럼 나도 기분이 좋아요. 그래서 저는 행복해요. 노리단을 해서 너무 행복합니다."


이 말을 하면서 나는 어찌나 울고 싶었던지. 분명 처음 노리단을 들어올땐 이런 생각을 했었다. 그렇지. 그랬었지. 하지만 지금은 이 사실이 너무나도 당연한 듯 했다. 수없이 많았던 공연들과 빡쎈 일정에 나의 몸이 지치고, 마음이 힘들고, 이젠 공연을 하며 관객들의 얼굴들을 관찰하기 보단 아무 생각없이, 아무 감정없이 공연을 하고, 끝나면 성취감도 전혀 느껴지지 않은.. 언제부턴가 노리단은 나에게 그런 생활이 되었다. 하지만 이 질문을 받으면서, 이 대답을 해주면서 나의 마음속에 감정을 튼튼하게 가둬두었던 유리가 이제서야 깨지면서 안에서 무언가 따뜻해지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다. 그제서야 진심으로 행복했고 진심으로 웃을 수 있었다. 웃었다.


세미나를 마치고 수많은 선생님들이 나에게 와서 악수를 청하고 자기 아이들도 이런 말을 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자기도 행복하다고. 정말. 난 가진게 너무 많음에도 항상 불평만 한다는 걸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내가 행복한지도 모르고... 바보. 팅이 역앞에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기차 시간을 기다리며 나에게 말했다.


"리사는 사람들이 왜 노리단 공연을 보면 좋아하는 것 같아?"
"음.... 신기해서?"
"리사는 신기한거 보면 다 재밌고, 즐겁고, 행복하고, 그래?"
"... 우리가 즐거우니까?"
"응. 관객들이 우리의 에너지를 받았기 때문이야. 우리가 즐겁고 그 에너지를 관객들에게 전해주니까 관객들도 즐거워하는거지. 난 리사가 한 말 중에 그게 가장 좋았어. 대학을 위해서, 주위 사람들이 뭐라해서, 노리단을 포기하려 했지만, 조한이 생각하는 것보단 직접 몸을 부딪혀서 체험해보고 땀을 흘려보는게 100배는 더 좋은 경험이라고하는 말을 듣고, 노리단에 들어와서 지금은 재미있으니까 노리단을 계속 하고 싶다라는 말을 했을때. 리사가 이번 하반기를 마치고 다음년에도 노리단을 할지 안할지는 모르겠지만 계약 테이블때는 꼭 오늘 했던 말들 생각하고 처음에 들어온 계기를 깊게 생각해보고 결정했으면 해."


그 말을 듣고 나는 웃기만 했다. 서울로 돌아가는 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이제 다음날 일어나면 새로운 날들이 올것만 같았다. 이젠 새로운 느낌으로 시작해야지. 다시 처음처럼, 열정을 느끼면서 해야지. 내가 항상 달고 다녔던 말을 잊어버렸다. 하지만 이번 계기로 다시 그 말과 그 말에 의미와 그 말에 느낌을 되살릴수 있었다.

[물이 반이 차있는걸 본 두 사람중 한사람이 "어? 이것밖에 안 남았네?"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한사람이 "이렇게 많이 남았어?"라고 생각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

항상 긍정적으로 생각해야 전진할 수 있겠지?
여튼, 광주에 가서 참 많은 것을 배우고 온 리사였습니다.
지금까지 했던 세미나 중에서 제일 재밌었구요^^
오랜만에 긴 글 올리니 기분 좋네요. 정말 나의 잃어버린 옛날 모습을 찾는 것 같은 기분이에요.

Posted by 리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