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 9. 16. 00:53


이번 방콕여행에서 가장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 사람이 리사였던 것 같다. 첫날 에이즈단체를 방문했을 때부터 마지막날 어린이 성착취와 인신매매 단체를 방문했을 때까지 가장 열심히 노트를 하던 친구가 바로 리사 너였다. 나는 사람들이 어떤 걸 노트하는지를 유심히 살피는 습관이 있다. 노트를 한다는 것은 대부분 1)모르는 것, 2)의미있다고 생각하는 것, 3)이야기를 듣다가 떠오른 자기의 생각, 이 셋 중의 하나이다. 그래서 노트 필기를 하는 것을 보면 대부분 그 사람이 어떤 것에 중점을 두고 이야기를 듣는지를 통해서 그 사람의 성향과 태도를 볼 수 있단다. 어떤 사람들은 개념적인 이야기가 잘 정리된 것만 받아적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사람의 경험을 중심으로, 누구는 데이타를 중시한다. 또한 어떤 사람은 듣는 이야기에서 상상력과 아이디어를 얻어서 자기 이야기 중심으로 노트를 한다.

그런데 너의 노트는 정말 '꼼꼼하다'는 말이 아까울 정도로 어디를 가던 그 사람들이 하는 이야기를 제대로 기록을 하더구나.듣고싶은 이야기만 기록하는것이 아니라 그 분들이 하시는 모든 이야기를 기록하더구나. 이것은 배움에 있어서 무엇보다 좋은 태도이다. 기록하는 습관이 제대로 갖추어진 사람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자세를 갖추었다고 말을 해도 부족함이 없단다. 너는 이런 기록하는 마음과 태도를 제대로 갖추고 있어 보는 내내 흐뭇하였다. 물론 방콕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준비하는 기간내내도 그랬지. 너는 가장 성실하였고, 가장 꼼꼼하였다. 이 여행이 끝난 후 가장 두꺼운 기록을 가지고 있을 너가 가장 많이 남긴 사람이 될 것이다. 어디를 가던지 그 좋은 습관을 잘 키웠으면한다. 남들은 그 습관을 가지려고 하더라도 배움에 대해, 남의 이야기에 대해, 듣는 귀가 없어서 못한단다. 그러니 그걸 얼마나 소중히 여기고 잘 키워야하는지 알겠지?

너 스스로도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하자에서 너는 많이 배우고 성장한 것 같다. 처음 글쓰기를 했을 때 내가 대단히 전형적인 하자 아이의 글쓰기라고 말을 한 것이 생각날 것이다. 그 이야기를 잘못 생각하면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조금난 성찰적으로 생각하면 좋은 이야기란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속한 곳에서 영향을 받는다. 그리고 영향을 통해서 성장한다. 하자에 들어와서 하자가 사람에게 주는 영향을 잘 받으면서 하자의 사람으로 커가는 것은 좋은 일이지 않겠니? 특히 처음엔 하자의 사람이 되어감으로써 배우지만 곧 그 배움을 넘어 너의 하자를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배움이 가지는 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너가 전형적인 하자의 얼굴과 향기를 가진 글을 썼던 것이 좋은 시작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 단계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더 배움을 성장시켜서 너의 하자를 만들어야하겠지. 이런 점에서 나는 너는 하자에 좀 더 있으면서 배우고, 그 후에는 하자에 공헌을 하였으면 한다. 단지와 유리 등등이 너에게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줄 수 있을 것 같다. 하자같은 공간에서 '선배'를 만나고 인연을 맺는 것은 대단한 행복이란다. 사실 사람은 교사와 학생의 관계로도 배우지만 선배-후배의 관계에서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챙길 수 있다. 하자에서 선배를 만나고 찾기는 좀 힘들 수도 있는데 너가 좀 더 적극적으로 이 관계를 맺어가면 어떨까 조심스럽게 제안해본다.

일본에 가서 프리타족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 이 역시도 너가 처음 글을 썼을때부터 세상을 약간 거리를 두고 약간은 지겹다는 듯이, 쿨하게 바라보는 너의 시선이나 태도와도 약간은 연관이 되는 것 같다. 사람들은 그 쿨함을 좀 싫어하는 경향이 있는데, 그 쿨함에서 아마 애정과 따뜻함이 안 느껴지고 약간 깍쟁이같은 인상을 받기 때문일 것이다. 어찌보면 너의 성실함도 아마 이 쿨함에서 기인한 것일 수도 있을 것같다. 간섭받고 남과 거리를 띄우기 위해서 미리 일을 처리하는 그런 성실함말이다. 너가 프리타족이 되어서 살고 싶다는 것에도 이런 자유롭고 쿨한 삶에 대한 바램같은 것이 있는 것 같다고 나는 느꼈다. 뭐,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내가 보기에 너가 추구하는 그런 쿨함이 차갑고 남에게 피해를 주는 그런 쿨함이 아니라 성실함과 세상에 대한 따뜻함을 가지고 있는 쿨함이니말이다. 게다가 나는 이번에 너가 너가 생각하거나 다른 사람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따뜻하고 남을 챙길줄아는 아이라는 것도 볼 수 있었다. 너는 이걸 방콕여행을 준비하고 다녀오는 동안에 잘 증명해 보여주었다.

이런걸 보면 너는 프리타족이 될 수도 있겠지만 마음이 잘 맞는 사람들을 만나면 산티아속에서 본 것처럼 또 괜찮은 공동체를 만들어서 서로 배려하고 돌보면서 정착하는 것에도 흥미를 가지지 않을까 생각해보았단다. 이전에 수업때 말을 한 것처럼 사람은 자유롭고 싶은 욕망과 나누고 배려하고 돌보고(혹은 그 반대로 배려받고 보호받고 돌보아지고) 싶은 욕망, 이 두가지의 욕망을 다 가지고 있다. 산티아속에서 만난 그 아저씨가 이야기한 것처럼 이 두가지의 욕망은 모두 다 '해방'을 지향할때 참된 가치를 가질 수 있다. 자유로운 것이 남으로부터의 도피가 아니고, 공동체로 산다는 것이 남에 대한 구속이 아니라, 무엇을 선택하건 자기 스스로를 해방하는 일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자유롭고 싶은 사람이 오히려 공동체에서 엄격한 훈련을 할 필요가 있고, 공동체에 속했던 사람이 공동체를 떠나볼 필요도 있는 것 아니겠니. 나는 너가 훌륭한 프리타족이 되기위해서라도 하자에서 한번 엄격함이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보는 실험은 너의 '선배'들과 한번 의기투합해서 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돌아오면서 하였단다. 위에서 말한 것처럼 단지도 유리도 젠척하지 않는 훌륭한 사람들이니 한번 투자해볼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싶단다.

이번 여행중에 가장 수고를 아끼지않은 리사에게 큰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나 더. 배우면 나눠야한다고 누누히 이야기하였던 것 생각나지? 너의 그 훌륭한 노트를 이곳에서 다른 사람들이랑 공유해보면 어떻겠니? 몇가지 단편적인 개념이나 아이디어로 야부리/노가리까는 수준의 알량한 글로 사람의 눈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너의 그 성실함이 듬북 담겨 있는 너의 노트를 공유하는 것이야말로 이곳에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선물이 아닐까한다.

Posted by 리싸